병에 걸린 일

 

그런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라시가 되고 2년째 정도 부터. 일단 그렇게 되면 나, 엄청 열중해 버려요.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해버리거든. 색스폰 같은 것은 확실히 그랬어.

(主17)그래서 병에 걸렸을 때가 제일 힘들었어. 사실은 어릴때부터 몸이 별로 튼튼하지 못해서, 병 자체는 멀리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의사 선생님과 친구가 되어버릴 만큼, 자주 병원에 다녔거든, 어릴 때. 그래도 입원은 한 적 없었으니까. 처음으로 입원해서, 진짜 무서웠어.

 

主17. 병에 걸렸을 때

'02년 3월. 돌연 "자연기흉"이란 병이 들이닥쳐 입원, 수술했다.

 

(主18)아라시 비디오에서 색스폰 라이브를 하려고 생각해서, 계속 연습하고 있었거든. 그 날도 연습하면서「왠지 아픈데~」라고 생각했더니, 금방 걷는 것 만으로도 아프게 되었어. 조짐 같은 것이 없었으니까 깜짝 놀랬어. 그대로 수술하게 되어서, 5일간 입원했었으니까.

 

主18. 아라시의 비디오「ALL or NOTHING」

'02년 6월 발매. 멤버 각자가 레벨 업하기 위해, 여러가지 것에 도전하는 방식을 따랐다. 반 다큐멘터리 비디오.

 

부모님이 엄청 걱정해 주셔서, 고마웠지만, 혼자서 입원해 있으면 여러가지 일을 생각해버려. (主19)마침「ナイスな心意気」의 프로모션 시기였는데, 그것도 할 수 없게 되버려서. 솔직히「아라시 짤리게 되는 걸까-」라고 생각했어.

 

主19.「나이스나 고코로이키」

'02년 4월에 발매된 8번째 싱글. 嵐(아라시)와는 별도의 그룹인「アラシ(아라시)」로서, 7:3 가르마·안경·양복 의상으로 가요 프로그램 등에 등장.

 

그러니까 입원 중, 한번이지만 방송 녹화에 갔던 때는 엄청 기뻤어. 아직 막 수술했을 때니까 아팠지만. 그래도 아파도, 나갈 수 없는 것보다는 좋았어. 멤버라든가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

 

병원에서는 계속 Blue Hearts의 곡을 듣고 있었어. 가사가 긍정적이라서 엄청 좋거든. 지금도 Blue Hearts의 곡을 들으면, 그때의 기분이라든가 병실의 공기까지 생각나. 그게 너무 선명해서, 거꾸로 들을 수 없게 되었던 시기도 있었을 정도.

 

색스폰은 중색생 때부터 동경했거든. 타케다 신지상이 부는 것을 보고, 음악실에 달려갔었다니까, 나. 근데 열쇠가 잠겨있어서 만질 수 없었어. 멋있잖아, 색스폰. 그건, 깊이가 있어요. 손가락으로 누르는 부분은 같아도, 부는 방법으로 다른 소리가 나오거든. 연습하는 것이 즐거웠어.

 

병 때문에 색스폰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정말 억울했어. 벌써 뮤지션 분들도 부탁하고, 촬영장소도 잡아뒀었거든. 그걸 위해서 엄청 연습하고 있었는데. 스텝에게「한번만 시켜줘」라고 계속 계속 부탁했지만, 안돼 라고 들었어. 굴복했어요. 비디오도 내 부분만, 그냥 인터뷰가 되어버리고.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5일 간은 귀중했다고 생각하지만. 한발 물러선 위치에서 아라시를 볼 수 있었고. 그때까지도 일은 좋아했고 소중했지만,「정말 이렇게나 좋아하는구나」라는 것도 뼈져리게 느꼈고. 가슴에는 지금도 그때의 수술 자국이 있어서, 매일 볼 때마다, 그 때의 기분을 생각해내고,「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 그건. 그때의 마음을 잊지않고 있을 수 있으니까.

 

너무 열중해 버리는 것도,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구. 싫어하지 않아요, 라면서 하는 것도. 근데 그걸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일이 되어버린다면 큰일이잖아? 그 정도는 어른이 되어서 가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멤버에게 보내는 편지

 

그렇게 해서 혼자서 일을 하면, 새삼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많이 있어. 아라시로 있을 수 있음의 기쁨이라든가, 아라시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라든가.

나, 아라시 많이 좋아하거든. 현재의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평소부터, 무심코 말해버리는거야.「멋져, 아라시. 많이 좋아해」라던가 라고(웃음). (主15)「24시간 테레비」에서 내가 썼던 멤버에게 보내는 편지같은 것을.

 

主15.「24시간 테레비」

매년 여름에 니혼테레비系에서 방송되는 자선 프로그램. 제27회째인 작년은 아라시가 메인 퍼스낼리티를 맡았다.

 

그래도, 그걸 쓰는 것은 상당히 고민스러웠거든. 대학노트 1권을 다 써버렸다니까. 처음에는 문장이 아니라, 데뷔하고 부터 일어난 일이라든가 추억에 남아있는 것을 항목별로 쓰려고 했었어. 그걸로 1권 다쓰고, 거기부터 문장으로 해나갔거든. 2권 있어, 노트. 그건 아무한테도 보여줄 수 없어. 여러가지가 써져 있으니까, 챙피하단말야. 쓰고 있었더니, 잊어버렸던 것도 여러가지 생각나더라구. 쓰면서, 울뻔하기도 하구말야.

 

(主16)「HERE WE GO!」투어할 때는 추억이 깊어. 매일 모두 같이 얘기 나누느라, 1시간 정도 밖에 안자면서 콘서트 했었거든.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않아(웃음).「미안. 콘서트에서 다치면 겁나니까 자게 해줘」라고 말할거야(웃음).

 

主16.「HERE WE GO!」투어

'02년 8월6일~9월8일까지 전국 7개소에서 행해졌던, 아라시의 5번째 콘서트

 

그 때는 정말로 다급했었거든, 모두. 위기감은 느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구. 앞이 안보인다고 할까, 엄청 불안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일 절대 불가능하지.

 

데뷔하고 1년 정도는, "쟈니즈의 새로운 그룹" 이란 것만으로, 주목 받잖아? 그게 2년 3년 지남에 따라, 자신들이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점점 주목받지 못하게 돼. 더욱 냉엄한 것을 말하면, 그룹 자체에 매력이 없으면, 내보여도 주목받지 못하지만.

 

우리 사무소의 선배들은, 그게 굉장하다고 생각해. 저마다 각자 실력을 키워서, 항상 새로운 것을 해가잖아? 아라시도「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강해. 그러니까「굉장해」라느니, 남의 일처럼 말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만.「지면 이룰 수 없어!」라는 얘기죠.

 

이같이, 나도 여러가지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도 아라시가 된 덕분에. 점점 목표 같은 것도 갖게 되었고, 그걸 향해서 노력하는 것도 생각하게 되었어. 하고 싶은게 잔뜩 있으니까, 지금. 욕심도 생기게 되었고,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선 이걸 클리어하지 않으면 이라든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뭘까 라든가,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었어요. 그런식으로 구체적으로 움직여가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어도, 자신의 안에 부적같은 것이 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개인 활동으로 보이게 된 것

 

자신의 캐릭터를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은, (主12)「A노 아라시!」를 시작했던 무렵부터지 않을까나. 그게 하나의 계기가 되었던 느낌이 들어. 처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을 나타냈던 것이 그 코너거든. 거기서 차츰 지금의 내 캐릭터가 만들어지게 된거야.

 

主12.「A노 아라시」

「D노 아라시」(니혼테레비系. 03년 7월~ 방송중) 안에서의 아이바짱 담당 코너. 아이바짱 흥미 그대로, 바보같은 실험을 반복한다. 매회, 실험결과를 총괄하는 아이바짱의 코멘트가 포인트. 

 

(主13)「천재! 시무라동물원」도 처음할 때는 갈피를 못 잡았었어. 매회 거의 말하지 못해서.「아, 말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타이밍을 모르겠는거야. 침울해진다니까-, 한마디 정도 밖에 말 못하고 녹화가 끝나면. 스텝에게도「좀 더 말해봐」라고 듣기도 하고. 일단「예」라고 말하지만「그런거 내가 제일 알고 있으니까」라고 맘 속으로 생각했었어.

 

主13.「천재! 시무라 동물원」니혼테레비系. 04년 4월~ 방송중.

 

아라시 안에서 말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도 확실히 하고 있고, 안심이었어. 그래도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 나름대로의 시간이 걸렸던거니까. 완전히 처음인 장소에, 혼자만 던져져서, 자신의 거취를 하나부터 만들어야만 하는 힘듦, 그 어려움을 이 프로그램에서 뼈져리게 느꼈어. 새삼스럽게 공부가 된 것이 무척 많아.

 

그래도 말야, 그걸 할 수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거지. 그런 상황에서도 "제대로 할 수 있어"라고 하는 것이 이 일을 해가는 최저 라인. 거기서 고전하고 있을 때가 아니거든, 정말은. 원래는, 거기부터 재밌게 해가기 위해서, 방송에 캐스팅된거니까. 나에게는 이렇게나 힘이 부족한거구나- 라고 생각했어.

 

시무라(켄)상에게 그런 것도 말했어. 그때부터는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고 계셔.

그 다음 스탭에게는「로케에 가고 싶어」라고 말했거든. 스튜디오에 있는 것만으로는 정말 말할 수 없으니까, 로케에 가면, 그걸 계기로 여러가지 말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계속 부탁하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로케에 갈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정말로 기뻤어. 게다가 1회 뿐인가라고 생각했더니, (主14)코너가 되었잖아? 호랑이라든가 사자라든가 지나치게 가혹한 것도 많지만, 전혀 끄떡없어. 물려도 상관없어 정도의 기분으로 하고 있어.

 

主14. 코너가 된「아이바의 동물원수행」

일본에서 세계까지 유니크한 동물원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몸을 내던져 수행중.

 

.... 그래도 말야, 진심을 말하면, 이런 것은 별로 말하고 싶지 않거든요. 뒤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할까. 제일 봐줬으면 하는 것은, TV 속이라든가에서 표현하고 있는 나니까. 그때 뒤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같은 것은,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거야.

 

 

 

 

 

 

아라시 데뷔 

 

아라시가 되는 것은 내가 제일 마지막에 들었거든. 라디오 일로 가는 도중에, 다른 곳에 가라고 들어서.「뭐지?」라고 생각했더니, 4명이 있었어. 거기서 갑자기「A·RA·SHI」의 안무가 시작된거야. (主8)그 3일 후에는 하와이인거예요. 정말 뭐가 뭔지 몰랐어. 쇼군이랑 오노군과는, 그때까지 거의 말한 적이 없었구.「데뷔하는거야」라고 듣고 나서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랐었어.

그러니까, 데뷔하는 거 같은 걸 생각도 안해봤구. 그런 자신도 없었구. 불안하고 불안해서, 무서웠어.「나, 어떻게 되버리는걸까」라고.

그래도 금방,「그런거 말하고 있을 때가 아냐」라고 알았지만말야. 연일,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해서 일하면서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에, 망설이고 있을 틈 같은게 없었어. 거기까지「아무 생각 없이 즐거우니까」로 해왔던 것이,「어쨌든 하지않으면 안돼」로 바뀌게 되었어.

 

主8. 하와이

아라시의 데뷔 발표는 99년 9월 15일, 하와이에서 행해졌다.

 

마음이 적극적으로 된 것은, (主9)악수회가 컸다고 생각해. 그렇게 모여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 CD가 10만장 팔렸다고 들어도 직감적으로 못느끼지만, 실제 8만명, 한사람 한사람과 악수하면, 그 무게는 싫어도 알게돼.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열심히 해야만 해」라고 생각했어. 그 다음은 5명이서 잡담이라든가 하고 있을 때가, 엄청 즐거웠거든. 당시 매니져도 굉장히 재밌는 사람으로. 이동중이라든가, 언제나 모두 크게 웃고 있었어.

 

主9. 악수회

「A·RA·SHI」의 발표일이던 99년 11월 3일, 국립요요기경기장에서 행해졌던 데뷔 이벤트. 11월 28일에는 오사카돔에서도 행해져, 대략 8만명의 팬과 악수를 했다.

 

그래도 일로 토크하게 되면, 전혀 달라져버리거든. 좀전까지의 하이텐션은 어디로 가버린거야 라는 느낌으로. 첫번째 콘서트할 때도, 5명이서 토크하는 연습했었어.「1회, 30분 지탱할 수 있을지 해보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던거야. 그래도 하고 있는 중에 연습하고 있다는 것 조차 잊어버리고, 멋대로 방을 나가버리는 녀석이 있기도 하고...... 엉망진창이었어(웃음). 그러니까 본방에서 30분 이상 지껄일 수 있었을 때는 엄청 기뻤어.「떠들 수 있었어~!」라고.

 

(主10)소년대의 니시키오리(錦織)상과 뉴욕에 가는 특별 방송 했을 때도, 너무 심해서 사무소 사람에게 혼났단말야.「너희들은 카메라 앞에서 전혀 말하지 못해」라고. 그건 자신들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무척 괴로웠어.  그래도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면 재밌게 되는건지 몰랐었어.「말하고 싶지 않은거야?」라고 들어서, 필사적으로「그런거 아녜요!」라고 말했었어. 아라시가 되어서 혼났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主10. 니시키리상과 특별 방송

「니시키리&아라시! 최초의 뉴욕 호화로운 꿈의 비밀 투어」(후지테레비系. 00년 11월 26일 방송)

 

(主11)모두, 굉장히 침울해져 있었어. 아라시는 말야, 혼나면 엄청 침울해지거든. 순식간에 쇼보-온 하고.

확실히 5명 각각의 캐릭터는 달라. 그래도 다르니까 란건, "그대로의 자신"으로 말해도 전혀 재밌게 되지 않거든. 각자가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 표현할까. 다소 오버스러울 정도로 나타내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다는 건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그래도 머리로 알고 있어도, 실제로 어떻게 나타내면 좋을지 몰랐어. 선배들의 콘서트 MC를 보거나, TV에서 코미디언들이 말하는 것을 보거나, 그렇게 정탐하면서, 여기까지 온 느낌.

 

主11. 모두 이 특별 방송에 출연했던 것은, 니노 이외의 4명. 니노는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일본에 혼자 남았었다.

 

 

 

 

 

 

쟈니즈 쥬니어가 되다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농구부에 들어가서, 더욱 더 농구에 열중하고 있었어. 그럴때 (主3)「아이러브 SMAP」을 보고,「SMAP랑 농구하고 싶어!」라고 생각해 버렸던거지. 같은 반이던 쟈니즈통인 여자애한테「SMAP랑 농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의논했더니,「쟈니즈 사무소에 들어가면 되잖아?」라고, 여러가지 가르쳐 줬어. 라고 해도 별로 응원해 준 건 아니고,「정말 보낼거야? 농구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몰라」같은 느낌. 나도「그렇구나-. 뭐 부활동으로 해보면 되지 뭐」정도의 기분이었어.

 

主3.「아이러브  SMAP」

정식으로는「아이러브 SMAP 전격 어린이 부대」테레비 도쿄系. 91~96년 방송

 

그러니까 1개월 정도 후에 오디션에 갔을 때는 깜짝 놀랬어. 춤춰보라고 해도, 춤출 수 있을 리가 없잖아.「쟈니즈란건 춤워야만 하는구나」라고, 거기서 처음 알아챘으니까.「춤추는구나, 챙피하잖아~」라고 생각했어. 처음에 나, 농구공 갖고 갔었거든. 당황해서 숨겨버렸어(웃음). 그 다음, 비디오 앞에서 이름 말하고, 햄버거를 받은 걸 기억하고 있어.「특기는?」이라고 물어봐서「없습니다」라고 대답했거든. 그래도 쟈니즈 쥬니어가 되어버렸으니까.

 

부모님은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어. 사진을 보낼 때 말했지만,「하고 싶으면 해보면 되잖아?」라고. 레슨에 처음 갈 때는 난처했어. 뭘 가지고 가면 좋을지도 모르겠고, 의논할 상대도 없고. 그래도 레슨은 즐거웠어. 뭐가? 라고 물어보면 곤란하지만. 즐거웠으니까, 계속했다고 생각해.

 

제일 처음에 외웠던 안무는 V6의「TAKE ME HIGHER」. 외우는 것은 힘들었어. 필사적이었어. 처음 갔던 방송국은 TBS. 지금도 가끔, 그때 썼던 대기실이랑 같은 타입의 방에 안내받을 때가 있어. 그러면, 그때의 일이 생각나.

 

사무실에 들어와서 1년 후 여름에는, (主4)연극「STAND BY ME」에 나가게 되었어. 연기 같으거 해본 적도 없고,「하고 싶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대사가 많은 것에 깜짝 놀랬지만, 압박은 그만큼 느끼지 않고 했었어. 거기까지 의식이 미치지 않았어. 넷이서 사이좋았으니까, 엄청 즐거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

 

主4.「STAND BY ME」

97년 7월 23일~8월 31일. 오사카, 아이치, 도쿄에서 상연. 아이바짱은 고-디역, 크리스는 니노, 테디는 마츠쥰, 반은 쥬니어의 이쿠타 토마군.

 

쥬니어 때는 (主5)드라마를 해도, (主6)영화를 해도, 가르쳐 주는 것을 하는 것 뿐이었어. 목표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 (主7)「8시다 J」라든가, 버라이어티 방송에 나가도,「잘 말해야지」라든가「눈에 띄어야지」같은 것도 생각하지 않았구. TV에 나오는 자신을 봐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가끔 다른 사람에게「봤어요」같은 말을 들으면, 조금 기뻤지만. 고민 같은 것도 안했고,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어떤지 같은거, 생각도 하지 않았어. 정말로,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했던거 뿐이었거든.

 

主5. 드라마

「우리들의 용기~미만 도시~」니혼테레비系. 97년 10월~12월 방송. 주연은 킨키 키즈. 감독은 堤幸彦상. 마츠쥰도 출연.

 

主6. 영화

「신주쿠 소년 탐정단」98년 극장 개봉. 공연은 마츠쥰, 칸쟈니에이또의 요코야마 유군, 후카다 교코짱, 카토 아이짱, 사카이 아야나짱.

 

主7.「8시다 J」

테레비 아사히系. 98년 7월~99년 9월에 방송되었던 쟈니즈 쥬니어 총 출연 방송. 아이바짱은 MC인 히로미상에게「슈퍼 아이돌 아이바짱」이라고 명명되었다.

 

 

 

 

어릴 때. 쥬니어 시절. 그리고 아라시에 대해서.

 

相葉雅紀

1만자 인터뷰

 

아라시의 핵탄두(!?) 아이바짱.

매우 좋아하는 아라시에 대해서 생각해 온 것.

 

 

 

 

소중한 가족

 

보육원에 다닐 때는 아버지 쪽의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졌었어. 아기 때는 엄마 쪽이었던거 같아. 부모님은 가게를 하고 있었으니까, 엄청 바빠서.

그래도 쓸쓸하단 생각은 하지 않았어. 엄마에게 응석부리는 대신에 할머니한테 찰싹 들러붙어 있었어. 보육원에 데리러 온 할머니랑 매일, 집과는 반대 방향에 있는 싸구러 과자가게에 들렀어. 내가「들렀다 가자」고 한거였지만. 정해진 금액 안에서, 어린 아이 나름대로 이리저리 궁리해서 사는 것이 즐거웠던거 같아.

할아버지는 영화라든가 야구를 보러 데려가 주셨어. 잔뜩 놀아주셨어. 여러가지를 가르쳐 주셨어.「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마라」「밥은 남기지 마라」「돈을 빌리지 마라」아직도 남았어.「보증인은 되지 마라」라든가. 어렸으니까 의미는 몰랐었지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어.

 

그런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였는데, 여러가지 곤혹스럽게 해드리기도 했어.

할머니는 꽃을 굉장히 좋아하셨어. 정원 한 쪽에 꽃을 키우고 계셔서, 꽃과 꽃을 수정시켜서 키위를 만들기도 하고. 그걸 내가 막대기로 전부 후려쳐서 넘어뜨려 버렸던거야. 할머니, 화가 나셔서.「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 거냐」라며 울어버리셨어. 그건 되살릴 수 없었어. 지금도 마음이 아파. 그때부터는 풀꽃도 소중히 하게 되었어. 무심코 밟지 않도록, 꽃이 있는 곳은 신경써서 걷게 되었어. 그렇다고 해도 정말 좋은 정원이었어. 어린애가 올라갈 수 있을 정도의 나무도 있어서. 친구도 불러서, 자주 정원에서 놀았었어. 그 나무가 말야, 엄청 잎이 무성해서, 안에 숨어버리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게 되버려. 비밀기지 같아서 굉장히 좋아했던거 같아.

 

동생이 태어나고 부터는 가족 넷이서 살게 되었어. 동생이 태어났을 때의 일은, 그다지 기억하고 있지 않은거 같아. 어느 사이엔지 아기가 있었던 느낌. 같이 놀 수 있게 되어서 처음 자신이 형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았을까. 동생이 3살 정도부터, 내가 목욕시켰어. 라고 말해도 아무것도 안하고, 맘대로 씻겼던 거지만(웃음).

 

동생하고는 자주 싸웠어. 뭐든지 금방 엄마한테 일러바치는 거야, 녀석이. 그래서 내가 화가 나서, 또 싸움이 되는 거야. 골프 클럽에 맞은 적이 있으니까. 위험하잖아? 일부러 한 건 아니었지만. 간혹 내가 뒤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덤벨을 발에 떨어뜨리거나. 그것도 일부러 한 건 아니었지만(웃음). 그래도 아팠단 말야. 뭐 나도 캐치볼할 때, 동생 얼굴에 공을 맞혀버린 적도 있지만. 게다가 키요하라(淸原) 선수의 사인볼(웃음). 코피가 뭉글뭉글 나와서, 깜짝 놀랬어. 우리 형제, 불의의 사고가 많았어.

 

아버지는 화나면 무서웠어. 자신있는 기술은 왕복 따귀 때리기. 몇 번이나 얻어맞았어. 몸이 휙 날아갈 만큼 강하단말야. 매일 무거운 중화요리 냄비를 잡고 흔드니까 완력이 엄청나거든. 아직도 근력이 떨어지지 않았다니까.

그래도 아버지가 화내는 것은 이거야말로 하는 때만 이니까, 평소에는 엄마 쪽이 무서웠어. 동생은 2층 창문에서 떨어뜨려질 뻔 했었다니까. 엄청 울었었어. 나도 소중히 여기던 (主1)마이클 조던 농구화를 창문에서 버려져진 일이 있었구. 어째서 혼났는지는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그건 굉장히 기억하고 있단말야. 나, 울면서 주우러 갔었으니까.

 

主1. 마이클 조던

아이바짱이 동경하는 사람. 창문에서 버려졌던 것은, 中1 때 처음 샀던 조던 모델의 농구화.「근데 내 발에는 맞지 않았던거야. 모처럼 용돈이랑 세뱃돈 모아서 샀는데. 그 후에는 소중하게 장식해 뒀었지만」

 

그런 것으로부터「우리 부모님은 화나게 하면 큰일나」라고, 형제가 맘속으로 생각했었어. 그래도 가게가 쉬는 수요일은 매주 외식에 데려가 주셨고, 여행도 많이 데려가 주셨던거 같아. 엄청 즐거웠어. 어째선지 TV게임은 사주지 않으셨지만. 하고 싶을 때는 근처의「토이짱」이란 형네 집에 갔었어. 엄청 잔뜩 가지고 있었어. 자주 놀아줬어.

 

초등학교에서는 수영 수업을 많이 좋아했어. 수영은 말야, 모두 짬이 있으면 놀려고 하잖아? 이상했어. 친한 녀석이 꾀를 부리고 견학해도, 난 혼자서 엄청 들떠서 떠들고 있었다구. 3살부터 스위밍스쿨에 다녔으니까, 수영하는 걸 좋아했거든.

 

정말 매일 스포츠만 했었어. 월~금은 농구, 토요일은 야구. TV도 별로 보지 않았어.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으니까, 자주 흉내내서 혀를 내밀고 농구했었어. 그래도 그건 입 안이 말라서 어쩔 수가 없어. 그렇게 하면서 농구하는 것은 무리(웃음).

 

(主2)프로레슬링도 좋아했어. 프로레슬러가 되려고도 생각했었다니까. 친구랑 기술을 연마하기도 하고말야. 단순한 놀이였지만(웃음). 집에는 아버지가 하시는 트레이닝 머신도 있었으니까,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한 환경은 갖춰져 있었던거죠(웃음). 동생하고 그걸 자주 사용했어. 난 거기서 차이가 생겼다고 생각해. 동생, 지금 엄청난 몸이거든. 엄청 강해. 복싱 같은 것도 하고 있으니까 분명, 싸우면 져버릴거라고 생각해. 그래도 19살이나 되어서,「라이온 킹」DVD에 몰두하거나 하지만(웃음).

 

主2. 프로레슬러 蝶野正洋, 武藤敬司, 橋本真也의 3선수가「투혼 삼총사」를 결성해서 고조되었던 시기

 

그리고, 우리집에는 많은 동물이 있었어. 아버지가 좋아하셔. 어릴 때부터 간단한 동물원 같았어. 개에 다람쥐에 앵무새에 금붕어에. 다람쥐는 귀여웠던거 같아. 초등학교 때 있었어. 이름은 리-상. 제일 최근의 애완동물은 육지거북인 곤타.

어느날, 일이 끝나고 돌아왔더니, 갑자기 있어서 깜짝 놀랬어. 집 안을 걸어다니게 하면 개가 조심조심 가까이 다가가는 거야. 그게 재밌었어.

나도 동물을 좋아해. 유치원 다닐 때, 올챙이를 키웠었어. 너무 기뻐서 항상 보고 있었어. 사료를 하루에 10번도 줘버리고. 그렇게 했더니말야, 어느날 포콧하고 다리가 나온거야. 엄청 깜짝 놀래서. 몰랐단말야.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걸(웃음).

 

첫사랑은...... 뭔가 잘 모르겠지만, 나. 유치원 때, 후지시로상이라는 애랑 자주 놀았었다고 생각하지만.「좋아해」라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그 애는 말야, 나보다 키가 컸어. 초등학교 때도 좋아하는 애는 많았었고. 선생님도 좋아했고. 어느것이 첫사랑이었을까......

 

 

 

 

매우 좋아하는 1장 「IROあせないで」의 이미지로 촬영했었어 (03년 10월 촬영)

 

 

 

모노크롬Ver. 하늘의 색이 점점 변하는 것이 이미지대로였어 (03년 10월 촬영)

 

 

 

귀족적(?)이어서 좋아하는 1장 (03년 4월 촬영)

 

 

 

八湖예요. 진눈깨비가 내려서, 엄청 추웠어 (04년 1월 촬영)

 

 

 

머리 이렇게나 길었었어? 조금 깜짝 놀랬어 ^^ (02년6월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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